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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간첩 경보②]연구원부터 협력사까지 싹쓸이 '두뇌 사냥'

최근 기술자체를 넘어 핵심 인력을 노리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최근 기술자체를 넘어 핵심 인력을 노리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THE Biz(더비즈)=고정빈 기자] 해외 경쟁사의 표적이 기술자료에서 핵심인력으로 옮겨간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에서는 수년간 연구개발과 생산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엔지니어 한 명이 곧 기업의 기술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액 연봉과 직책, 주거비와 자녀 교육비 등을 앞세운 스카우트도 반복된다. 설계도와 공정자료를 빼돌리지 않더라도 핵심인력이 이동하면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까지 함께 넘어갈 수 있다. 이에 산업스파이의 방식이 기술을 훔치는 데서 기술을 가진 사람을 확보하는 '두뇌 사냥'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연봉 2~3배에 교육비까지… 뿌리치기 힘든 유혹

산업스파이의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반도체기업 청두가오전(CHJS) 사건이다. 청두가오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임원으로 근무한 최모씨가 2020년 중국 지방정부와 합작해 설립한 반도체 제조업체다.

문제는 회사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경찰 수사 결과 최씨는 중국에서 반도체사업을 추진하면서 국내 반도체기업에서 일하던 전문인력을 대거 접촉했다. 삼성전자 출신 D램 수석연구원 등을 포함해 국내 기술인력을 영입하고 이들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18나노급·20나노급 D램 제조기술을 활용한 혐의를 받는다.

삼성전자가 해당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입한 비용만 각각 2조3000억원과 2조원에 달한다. 20나노급 D램 개발에는 2000명이 넘는 인력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두가오전이 국내 인력에게 내건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직 대상자들에게 기존보다 최소 2~3배 높은 연봉을 제시했고 중국 현지 체재비와 자녀 교육비 등도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국내 반도체기업 출신 인력들이 청두가오전으로 이동했다. 경찰은 이 가운데 30여명을 입건해 추가 기술유출 여부를 조사했다.

사람이 움직이자 기술개발 속도도 달라졌다. 청두가오전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 종합절차서와 최종 목표규격 등 관련 기술을 활용해 공장 준공 1년3개월 만인 2022년 4월 시범 웨이퍼 생산에 성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상 D램 제조기업이 시범 웨이퍼를 만드는 데 최소 4~5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시간을 줄인 셈이다. 핵심은 자료 몇 개가 아니다.

반도체 생산에는 설계기술뿐 아니라 수많은 공정조건과 장비 활용방법, 수율을 높이는 경험이 필요하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조건을 조정해야 하는지 같은 현장 노하우도 제품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런 경험은 문서에 전부 담기 어렵다. 오랜 시간 같은 공정을 다룬 엔지니어가 움직이면 기업이 수년 동안 축적한 시행착오와 문제 해결방법도 함께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 경쟁사가 핵심인력을 노리는 이유다.

이제는 기술인력을 알선하고 돈을 받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사진=픽사베이
이제는 기술인력을 알선하고 돈을 받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사진=픽사베이
◆기술 빼돌리기 전 '이직'부터… 브로커까지 등장

인력 확보가 하나의 산업스파이 수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술인력을 해외기업에 연결하는 전문적인 움직임까지 등장했다.

검찰은 2024년 국내 반도체 핵심인력의 중국기업 이직을 알선하고 그 대가로 약 3억원의 소개료를 챙긴 혐의로 삼성전자 전직 임원을 구속기소했다. 국내 핵심인력을 해외기업에 소개해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첫 사례였다.

당시 검찰은 해당 인물이 중국 반도체기업으로 넘어갈 국내 기술인력을 물색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해외기업 입장에서 이미 기술과 경험을 갖춘 인재는 매력적인 선택이다.

반도체 공장을 짓고 최첨단 장비를 확보한다고 곧바로 한국 기업 수준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비를 운영할 사람이 필요하고 공정을 설계할 사람이 필요하다. 불량률을 낮추고 수율을 끌어올린 경험까지 있어야 실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인력을 육성하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경쟁사에서 10년, 20년 동안 근무한 엔지니어를 데려오면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사람에게 돈을 쓰는 것이 장기간의 연구개발비와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이 되는 셈이다.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과거 산업기술유출 사건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반복된다. 2009년 러시아의 한 신생 자동차업체는 국내에 지사를 설립한 뒤 국내 자동차기업의 전 연구개발(R&D)센터장 등 핵심기술인력 약 200명을 스카우트하고 엔진 설계기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에는 국내 반도체기업에서 퇴직한 기술부장이 대만업체로 이직하면서 첨단 공정기술을 유출하고 추가 기술확보를 위해 국내 현직 연구원까지 접촉하다 적발됐다. 시간이 지나도 방식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해외기업으로의 이직과 기술유출이 함께 이뤄지는 사례도 반복된다. 지난해 검찰은 SK하이닉스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했던 직원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은 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관련 첨단기술과 영업비밀을 무단으로 확보했다.

방법도 치밀했다. 사내 문서관리시스템에서 기술자료를 출력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촬영한 사진만 1만1000여장에 달했다. 일부 자료에서는 유출금지 자료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대외비' 문구와 회사 로고까지 제외한 채 촬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는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구현에 필요한 하이브리드 본딩 관련 자료도 포함됐다.

눈에 띄는 부분은 이직 과정이다. 검찰은 해당 직원이 회사의 영업비밀 자료를 활용해 자신의 이력서를 작성한 뒤 중국기업 2곳에 제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자신이 어떤 기술을 알고 있고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가 해외기업에 자신의 몸값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 셈이다. 이직과 기술유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연구원이나 엔지니어가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개인이 한 회사에서 배운 일반적인 경험과 역량을 활용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직 과정에서 회사의 구체적인 기술자료와 영업비밀을 들고 가거나 이를 새로운 직장에서 그대로 활용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경험은 유지, '머릿속 기술'의 딜레마

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퇴직자가 노트북과 USB를 회사에 반납했다고 모든 기술이 회사에 남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공정에서 특정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조건을 먼저 조정해야 하는지, 특정 장비에서 수율을 높이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제품을 개발하면서 어떤 방법이 실패했는지 등은 연구원 개인의 경험으로 남는다.

이른바 '암묵지'다. 문서나 데이터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과 노하우를 의미한다. 첨단 제조업에서는 이런 암묵지가 특히 중요하다. 제품 설계도만 확보한다고 똑같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

수백단계의 제조공정과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대응하려면 실제 생산경험이 필요하다. 같은 장비와 재료를 사용해도 수율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다. 기술을 보호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핵심인력이 경쟁사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직원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평생 특정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엔지니어에게 동종업계 취업을 금지하면 사실상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기술보호와 직업선택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홍준호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는 "첨단산업에서 핵심인력 자체가 사실상 움직이는 기술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은 특허나 설계도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시행착오, 공정조건, 문제 해결 방식과 같은 암묵적 노하우에 상당 부분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반도체, 배터리, AI와 같은 분야에서는 핵심인력 몇 명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경쟁기업이 연구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기술격차를 빠르게 줄일 수 있다"며 "해외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자료를 직접 확보하는 것보다 해당 기술을 개발하고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사진=삼성전자·SK하이닉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사진=삼성전자·SK하이닉스
◆삼성·SK하이닉스도 막았다… 전직금지 결정

이 문제는 해외기업과의 관계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 7월 법원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낸드플래시 설계업무를 담당하다 SK하이닉스로 이직한 핵심인력 2명에 대해 1년6개월 동안 전직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두 사람이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에 해당하는 낸드플래시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경쟁사로 이동하면 기술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기술보호 필요성을 인정했다. 해당 기술이 경쟁업체에 노출되면 경쟁사가 동등한 기술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줄일 수 있고 삼성전자는 그만큼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요구한 전직금지 기간 2년을 그대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2년 동안 경쟁업체 취업을 막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기간을 1년6개월로 줄였다.

이 결정은 핵심인력 관리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키운 인력이 경쟁사로 이동하면서 기술까지 넘어갈 가능성을 방치하기는 어렵다. 반면 퇴직 이후 수년 동안 동종업계 취업을 제한하는 방식도 개인에게 과도한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전직금지 약정이 모든 경우에 무조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법원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과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전직 제한기간과 지역, 근로자에게 제공한 대가, 퇴직 경위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 판단한다. 결국 계약서 한 장만으로 핵심인력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사진=삼성전자
◆단속과 통제만으로는 한계… 깊어지는 기업의 고민

해외 경쟁사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할수록 국내기업의 고민은 커진다. 청두가오전 사례처럼 연봉을 최소 2~3배 높이고 주거비와 자녀 교육비까지 지원한다면 개인 입장에서는 쉽게 외면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특히 정년이나 승진 문제를 고민하는 고경력 엔지니어에게 높은 직책까지 보장한다면 해외기업으로 이동할 유인은 더 커진다.

하지만 보안을 강화하고 법적 조치로 이직을 막아서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서버를 잠그고 USB 반출을 차단할 수는 있어도, 연구원 머릿속에 축적된 수십 년간의 경험과 시행착오까지 묶어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직업선택의 자유와 충돌하는 지점까지 겹치며 기업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안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단순히 연봉만 올리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고, 우리 회사에서 연구하고 성장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인재 유지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송봉규 한세대학교 IT학부 융합보안전공 교수는 "해외기업의 핵심인력 영입을 단순히 높은 연봉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국내에서 경력이 정체됐다고 느끼는 시점에 더 높은 직위와 보상, 연구환경과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면 이직 유인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기업도 핵심인력에게 계속 남아 있을 이유와 성장할 수 있는 미래를 제공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연구자와 임원의 이직 자체를 기술유출로 보면 안된다. 보호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이동이 아니라 이직 과정에서 영업비밀이나 국가핵심기술이 부당하게 함께 이동하는 것"이라며 "보안부서뿐 아니라 인사·연구개발부서가 핵심인력의 경력관리와 기술 접근관리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준호 교수는 "정상적인 이직과 기술유출의 경계는 구분하기 어렵다. 개인의 머릿속에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새로운 직장에서 활용되는 경우에는 무엇이 개인의 일반적인 직무능력이고 무엇이 기업의 보호대상 기술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직 전후 어떤 기술에 접근했고 새로운 직장에서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핵심인력 보호를 이유로 이직 자체를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방식은 현실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직업선택의 자유와 기술인력의 정상적인 이동 역시 보호해야 한다"며 "결국 핵심인력 보호의 방향은 이직을 막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이직은 보장하되 기업의 핵심기술이 함께 이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평가했다.

결국 산업스파이가 도면이나 데이터가 아닌 '사람'을 노리는 상황에서 단순한 퇴직 감시나 전직 금지 같은 사후 통제만으로는 기술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기술을 지키기 위해 기술을 가진 인력을 어떻게 품고 유지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출처 : THE Biz(더비즈)(http://www.the-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