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필] 거짓말하는 양치기와 가렴주구하는 탐관오리의 실체
어린이 동화책으로 알려진 이솝우화는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노예이자 이야기꾼 이솝이 이집트·리비아 등 다른 나라에서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들을 정리한 그리스 시민, 즉 당시 유권자들을 위한 교훈서다.
그런데 이 책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을 주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원래 소수의 강자가 득세한 세상에서 다수의 약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현실적인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책이다. 그리스 원전에 담긴 358개의 우화 중 흔히 ‘늑대와 양치기 소년’ 등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원제는 ‘장난삼아 골탕먹이기를 좋아하던 양치기’다. 이와 관련된 교훈은 “거짓말하지 말라”로 알려졌지만, 원래는 선출된 책임 있는 자가 거짓말하는 악의적 이유는,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에게 큰 피해를 입히니 유권자들은 이를 유념하라는 것이다. 어제 개각 결과를 보니 이 우화가 생각난다.
며칠 전부터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급락하고, 20~30대 청년층은 물론 거의 전 세대와 지역에 걸쳐 국정운영 반대 여론이 60%에 육박하는 부정적 평가 결과가 나왔다. 이를 그동안 추진된 여러 정책과 이슈들에 대한 다양한 기관의 구체적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해 보면, 현 정부가 추진한 정책 중 가장 잘못된 정책은 부동산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젊은 층과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에서도 부동산 세제 정책에 대한 거센 반대 기류가 확인됐다. 그 밖에 육·해·공 3군 사관학교를 국군사관학교로 통합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의 58%가 반대하는가 하면,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은 52.1%가 반대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간의 삼권 분립은 국민의 74%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고, 우리 국민의 64.4%는 현재의 경제 상황을 나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처럼 대다수 국민이 이재명 정부의 국정 비전 및 가치 실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공정과 상식이 잘 실현되지 않으며, 경제가 불안하고 나빠지고 있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장윤기 사건 등으로 보완수사권 폐지 반대 의견이 61%로 찬성하는 의견의 세 배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한때 국민의 53.4%가 반대했던 ‘이재명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의 대표였던 민주당 김승원 의원이 어제 개각에서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로 낙점받았다. 더욱이 국토부 장관으로 낙점받은 홍지선 국토부 2차관은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 현 부동산 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대선 과정에서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한 이 대통령의 말바꾸기 목적의 농담도 민심을 들끓게 하고 있다. 세금 개편에 따른 민심의 거센 반발을 지적하며 구윤철 부총리에게 “세금 만지는 사람은 바꾸면 반드시 욕을 먹게 돼 있다”며 “바꿔서 혜택을 보는 쪽은 가만히 있고, 바꿔서 부담이 늘어나는 쪽은 엄청나게 반감을 가지게 돼 있으니까 무조건 기어서 다니라”고 농담했다. 이에 구 부총리는 “네, 알겠습니다”라며 웃음으로 답했다. 이러한 농담과 웃음은 범국민적 성토와 조세 저항을 “떳떳이 먹는 욕“이라며 조롱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화에서 마을 사람들이 화가 난 이유는 양치기의 거짓말 때문이 아니다. 이들이 정말 분노한 이유는 “심심해서” 거짓말했다는 이유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대에 양치기는 정말 바쁘고 일이 많았다. 양의 거친 성격 때문에 들이 받히기 일쑤고, 목초지를 따라 계속 움직여야 한다. 늑대가 나타나면 직접 쫓아내야 하고, 양을 잃으면 온종일 찾아다녀야 한다. 힘들고 고된 일을 하는 양치기는 심심해서 농담과 조롱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양치기가 여러 번 거짓말하며 마을 사람들을 조롱한 이유가 “심심해서”가 아니라 양을 잃어버렸거나, 팔아먹었기 때문은 아닌지 모두 의심했다.
국민 뜻에 반(反)하는 정책을 추진한 사람이 장관이 되는가 하면, 현 정부에 불만 많은 청년을 상대로 돈을 풀고, 논란 많은 ETF 정책을 도입하며 온 국민이 반대하는 부동산 정책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이유가 민생과 경제를 위한 것이라는 청와대 주장을 믿을 수 없다. 국민의 세 부담 고통과 냉담해진 민심을 대통령과 부총리가 조롱하는 이유가 혹시 자신의 이익(공소취소, 근저당 설정 등)을 탐하는 탐관오리(貪官汚吏)의 가렴주구(苛斂誅求) 행태를 속이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리스 시대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가 양을 잃거나 팔아먹기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않을까 늘 경계했다. 그런데 이를 조롱한 양치기의 거짓말 때문에 정말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양치기만 쫓겨난 것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양을 잃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는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를 그냥 두면, 진짜 위기가 왔을 때 모두를 파국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이 우화는 2천 년 넘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홍문기 한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s://www.joongb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