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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간첩 경보⑤·끝] 도면 밖으로 나온 시행착오… 해법은 '보상'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조선 등 대한민국 주력산업의 핵심기술이 해외로 새고 있다. 기업이 수년간 막대한 자금을 들여 확보한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면 경쟁사의 추격시간이 단숨에 줄면서 국가 산업경쟁력까지 위협받는다. 국회에서도 산업기술 해외유출을 간첩죄로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되는 등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THE Biz(더비즈)는 산업 스파이의 실태와 정부·기업의 대처 방안 등 기술 유출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경기도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G-SPEC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사업. 사진=경기도
경기도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G-SPEC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사업. 사진=경기도

[THE Biz(더비즈)=양승보 기자] 핵심 기술인력이 경쟁사로 옮길 때마다 기업의 고민도 깊어진다. 수년간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가 인력과 함께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헌법이 보장한 직업선택의 자유를 내세우는 근로자의 이직을 무작정 가로막을 수도 없다.

산업현장에서는 통상 ‘전직금지 약정’을 안전판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서약서 한 장 썼다고 법원이 무조건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기술의 가치뿐 아니라 회사가 근로자의 기본권 제한에 상응하는 실질적 대가를 치렀는지를 핵심 잣대로 본다.

삼성디스플레이 사건이 대표적이다. 모바일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개발 업무를 담당했던 연구원이 퇴직일로부터 2년이 경과하기 전에 중국 관련 업체로 이직하려 하자 법원은 기업의 전직금지가처분 요구를 받아들였다. 해당 연구원이 중요 기술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업무를 담당했고 기업이 전직금지의 대가로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을 별도로 지급한 점 등이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쿠팡 물류배송 시스템 개발 인력이 다른 기업으로 이직한 사건에서는 전직금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가 보호해야 할 독자적 기술과 유출 위험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데다, 재직 중 지급한 급여 외에 퇴직 후 직업선택을 제한할 만한 실질적 대가가 없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 두 판결은 전직금지 서약서에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근로자의 이직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업이 전직을 제한하는 대신 합당한 보상을 제공했는지, 근로자가 해당 기술과 얼마나 밀접한 업무를 맡았는지, 실제로 보호해야 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법원이 함께 따지는 것이다.

특히 두 사건에서 눈에 띄는 차이 중 하나는 ‘보상’이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일정 기간 제한하려면 기업도 그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창구 법무법인 태웅 변호사는 “충분한 보상은 전직금지 약정으로 인한 피해와 사이의 이익균형을 이루게 한다”며 “이는 보다 긴 기간의 전직금지의 기간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1~2년 전직금지, 기술 보호 충분할까

설령 전직금지 약정이 법적 효력을 인정받더라도 또 다른 현실적 딜레마가 남는다. 일정 기간 경쟁사 취업을 막는 것만으로 기술 유출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직금지 기간은 근로자의 직업선택 자유를 제한하는 만큼 무기한 인정될 수 없다. 법원은 기업의 기술 보호 필요성과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 등을 함께 고려해 제한 기간이 과도한지 판단한다. 이 때문에 산업현장에서는 1~2년 안팎의 전직 제한을 두고 다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1~2년이라는 시간은 기술을 온전히 지켜내기에 턱없이 짧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첨단산업은 하나의 기술을 확보하고 양산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데 오랜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핵심 인력이 오랜 기간 담당해 온 프로젝트 노하우와 미세 공정 최적화 기술의 경쟁력은 1~2년 쉬었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조 변호사는 산업마다 기술격차와 기술의 수명주기가 다른 만큼 일률적인 기간을 적용하기보다 산업별 특성에 맞는 전직금지 기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기업의 요구대로 전직금지 기간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근로자가 짊어져야 할 직업적 희생과 손실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에서 오랜 기간 경력을 쌓은 기술자에게 동종업계 취업을 수년간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 대부분을 제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방제완 한세대학교 융합보안학과 교수는 “전문기술 인력의 경우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일하지 못하도록 광범위하게 제한하면 직업선택의 자유 문제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며 기업이 실제로 보호해야 할 기술과 정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해당 정보의 부당한 취득이나 반출·사용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면 무엇을 줘야 하나

전직금지 기간을 무작정 늘릴 수 없다면, 자연스레 화두는 ‘기업이 근로자에게 얼마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로 옮겨간다.

법원이 인정하는 전직금지 보상은 퇴직 시 관행적으로 쥐여주는 단순한 위로금이나 퇴직금과는 법적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근로자가 퇴직 후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을 일정 기간 선택하지 못하는 데 따른 손실을 기업이 보전해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법원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년간의 전직을 제한하는 반대급부로 '1년치 연봉'을 별도 보상금으로 쥐여준 것이 근로자의 실질적 손실을 보전한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통상적인 연봉이나 성과급, 장기근속에 따른 보상금 등은 퇴직 후 직업선택을 제한하는 대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직 중 노동의 대가와 퇴직 후 기본권 제한의 대가는 엄격히 분리해 봐야 한다는 것이 사법부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핵심인력에게 단순히 전직금지 서약서만 받는 방식에서 벗어나 제한의 범위와 기간, 이에 따른 보상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이 강한 의무를 요구할수록 그에 비례하는 확실한 금전적 대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직금지 대가를 지급하는 것만으로 핵심인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경쟁사 이직 시점을 1~2년 잠시 늦출 수는 있을지언정, 핵심 인재가 회사를 떠나려고 결심한 근본적인 배경과 이직 동기 자체를 해소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못 나가게’보다 ‘남고 싶게’… 보상이 기술 보호 수단

결국 중요한 것은 퇴직 이후 사람을 억지로 묶어두는 보상보다 재직 중인 핵심 인재가 회사에 스스로 머물 이유를 만들어주는 사전 유인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인책의 핵심이자 가장 확실한 수단이 바로 보상이다. 핵심 기술인력에게 경쟁사보다 높은 수준의 보수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성과에 따른 보상, 장기근속 인센티브, 스톡옵션이나 연구 성과 공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기간 근무할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코퓨처엠은 2023년부터 우수인재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부여한다. RSU를 받은 직원은 장기근무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주식을 최종적으로 받는다.

특히 포스코퓨처엠은 RSU를 지급받는 임직원의 구체적인 신상을 외부는 물론 사내에도 공개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직원 간 불필요한 위화감 조성을 방지하는 동시에, 핵심 인력 명단이 노출돼 글로벌 경쟁사의 '표적 스카우트' 대상이 되는 역효과를 사전에 원천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는 퇴직 시점에 쥐여주는 전직금지 대가와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직금지 보상이 이미 기업을 떠난 근로자의 경쟁사 이동을 일정 기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면 RSU나 장기성과급 등은 재직 중인 인력이 애초에 회사를 떠날 유인을 낮추는 데 목적이 있다.

실제로 포스코퓨처엠의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자발적 이직률은 2023년 4.71%에서 2025년 3.85%로 감소했다. 법적 통제보다 실질적인 보상 체계가 인재와 기술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안임을 증명한 셈이다.

◆'통제'에서 '유인'으로… 남은 과제는

전직금지 약정은 퇴직 이후 인력 이동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사후적 수단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법원 역시 보호 가치가 있는 기술과 정당한 대가가 전제될 때만 효력을 인정하고 있어, 서약서 징구만으로 인력 이동을 전면 차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산업계에서는 인력이 이탈한 뒤 통제하기보다, 재직 단계에서 이직 유인을 낮추는 방식이 더 실효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장 경쟁력을 갖춘 보수와 장기근속 인센티브, RSU 같은 사전 보상 제도가 정착되고, 여기에 정보 접근 권한 통제나 반출 기록 점검 등 내부 보안 체계가 병행돼야 기술 유출 위험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보상과 보안관리만으로 모든 이직과 유출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의 기술 보호 필요성과 근로자의 직업선택 자유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구조상, 일방적인 제한과 통제 위주의 접근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방 교수는 “인재가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인력이 이동하더라도 핵심기술은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함께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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