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제 쉬어요?대학생 번아웃에 관하여.
임유진 기자.
꽃들의 만개함은 곧 청춘도 함께 만개했음을 알린다. 그렇다는 건 개화하는 데 있어 모든 힘과 영양분을 쏟아냈다는 뜻이 된다.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지만, 막상 그렇게 하면 불안과 죄책감이 몰려온다. 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대. ‘쉼’이 사치가 되어버린 오늘, 우리는 번아웃이라는 이름의 짙은 터널 속을 지나고 있다.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3명 중 1명은 최근 1년간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취업난과 진로 불안, 업무 과중에 지친 청년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 번아웃의 배경으로는 진로 불안(39.1%), 업무 과중(18.4%), 일에 대한 회의감(15.6%) 등이 꼽혔다.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도 5.2%로, 불과 2년 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쉬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실제로 한세대학교 재학생들에게 물었다.
“노력했는데 성과가 안 나올 때, 무력감이 밀려와요.” (미디어영상광고학과 A양)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갈피가 안 잡힐 때,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져요.” (컴퓨터공학과 P양)
하지만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몸은 편한데 이렇게 쉬어도 되나 싶고 주변을 보면 자꾸 자책하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멈춰 있지? 쉬는 것조차 죄책감이 되어 돌아온다. 이런 의견들이 대다수였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잠깐 행복하다가 금방 현실이 자각돼요. 이래도 되나 싶고, 마음이 허전해요." (미디어광고학과 A양)
"이렇게 쉬어도 되나 싶어요.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한 느낌?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걸 보면 나도 얼른 정신 차려야겠다 싶어요." (컴퓨터공학과 P양)
쉬지 못하는 우리를 더욱 옥죄는 건 ‘갓생’이라는 이름의 자기 착취 문화다. 해야 할 일을 끝낸 뒤에만 겨우 쉰다는 감각, 그것마저도 불안과 죄책감을 동반한 ‘조건부 쉼’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끔은 내가 뒤처진 패배자가 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예요.” (중국어학과 L양)
“해야 할 일을 다 끝낸 후에야 겨우 쉰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전까지는 아무리 누워 있어도 마음이 불편해요.” (미디어영상광고학과 Y양)
‘갓생’을 살기 위해 몰아붙이다가 번아웃에 빠지고, 다시 그 번아웃을 스스로의 의지 부족 탓으로 돌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중국어학과의 L양은 “활동적인 자기계발을 마치고 후련해하는 나의 모습을 볼 때, 오히려 그게 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며, “뭔가를 끝내고 나서의 성취감이 진짜 쉼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 성취를 위해 달리라는 말이, 이제는 쉼조차 불편하게 만든다. 진정한 쉼의 의미조차 의심하고 정의할 수 없게 되어버린 모습이 대학생 번아웃의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무조건적인 생산성’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삶에는 생산적이지 않은 하루도 필요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아무 이유 없이 산책하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하루의 여백'이 다시 삶을 이어가게 하는 작은 힘이 된다.
쉼은 결코 게으름이 아니다. 쉬는 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된다. ‘쉼’이란, 해야 할 일을 다 끝낸 뒤 허락받는 보상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찾아야 할 권리다. 가끔은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그것이
진짜 ‘쉼’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지 생각해보며, 괜찮아도 괜찮다고 서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작성자 : 임유진
담당자 : 홍숙영 대외협력처장